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교육구 발전 위해 함께 해달라"

LA통합교육구(LAUSD) 교육위원회 3지구 선거에 아시안이 사상 처음 후보로 출마해 눈길을 끈다.     노스할리우드에 있는 제임스 메디슨 중학교에서 6년째 수학을 가르치는 중국계 댄 챙(48.사진) 교사로, 그는 최근 본지를 방문해 한인들에게 지지를 요청했다.     한인 아내와 결혼한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2살 때 미국 코네티컷으로 이민을 왔다. 1984년 UC버클리 진학을 위해 캘리포니아주로 온 그는 UCLA에서 비즈니스 석사 과정을 마친 후 20여년간 비영리 자선단체인 LA공립교육기금(LA Fund for Public Education)을 공동 설립해 LAUSD 기금 마련을 위해 뛰어다녔다.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그가 LA 지역사회에 설립한 차터스쿨은 17개나 된다.     챙 후보는 “현재 LAUSD 학생의 70%는 수학, 60%는 읽기 수준이 학업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20년간 변하지 않았다”며 “나부터 학생들의 학업 성취율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 최대한 많은 교육자원과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어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소극적인 형태의 관료주의를 없애 규칙과 절차를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학생들의 학업 향상에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며 또한 학생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하도록 학교폭력, 정신건강 치료 지원 등을 약속했다.     이외에도 지역 학교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는 챙 후보는 “현재 LAUSD 학생의 절반만이 4년제 대학 지원 최소 요건을 갖췄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우고 교사와의 깊은 유대관계 형성을 조성해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의지를 키우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챙 후보는 “교육위원이 되면 아시안을 포함한 모든 학생이 존중받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학교 공동체를 조성하고 싶다”며 “또한 학생들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학교로 발전시키고 싶다. 한인 유권자들도 나와 함께 LAUSD의 성장을 위해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한편 총 7명의 교육위원으로 구성된 LAUSD교육위원회는 LAUSD 산하 학교의 예산 관리, 정책·규정 시행 및 구상, 투자 감독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웹사이트: www.chang4change.org 김예진 기자 kim.yejin3@koreadaily.com교육위원회 아시안 교육위원회 후보 인터뷰 기사 후보 출마 로스엔젤레스

2024-02-28

[중앙칼럼] 정치인들이여, 소통은 기회다

불편할 수 있는 질문에 오히려 자신감을 보이는 정치인은 준비된 정치인이다. 지난달 캐런 배스 LA시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미리 보냈던 9가지 질문에는 없었던 내용을 대뜸 물었다. 질문에 앞서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는 “시정에 관해 시장이 ‘불편하게 생각할 질문’은 없다”며 답변을 내놓았다. 답변 내용의 평가와는 별개로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야전에서 성장한 정치인이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은 자신의 철학과 아젠다를 기자에게 주입하려 하기 쉽다. 지역구가 LA한인타운을 포함하고 있는 미겔 산티아고 주 하원의원은 소통 능력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한인 사회의 아젠다와 고민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어떤 질문이든 답변의 끝은 항상 자신의 정책과 선거로 회귀했다. 그의 가치관과 별개로 그의 답변은 밀린 숙제하듯이 단어와 문장이 쉽게 반복됐다.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된 그의 간절했던 정치 역정도 한몫한 것일까.   섀런 쿼크-실바 주 하원의원은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설명이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무작위 주제와 아이디어에 더 열정을 보이는 스타일이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굳이 조용한 실내를 두고 야외에서의 인터뷰를 고집한 것도 독특한 제스처다. 그는 억지로 세련된 표현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기준은 항상 소수계 저소득층이었다. 그에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 포인트다.     소통 자체에 소극적인 경우도 있다.  영 김 연방하원의원은 선거가 끝나면 좀처럼 언론이 만나기 힘든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의정활동에 바빠서”라는 보좌진과 주변의 설명이 있지만 지난해 당선 이후 어느 매체에서도 긴 호흡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김 의원은 최근 한 유튜버와 영상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길게 설명했다. 맞다. 정치인도 자신의 철학에 따라 편안한 매체를 찾고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치도 비즈니스라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믿는 시간과 장소는 피하고 싶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일반적인 생리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재선 연방 하원의원답게 그것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소통 방식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좀 더 소통에 담대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존 이 LA 시의원은 보좌관을 활용하는 ‘대변인 스타일’이 특징이다. 특히 한인 언론들에 더욱 그런 듯하다. 매 사안에 대해 보좌관이 기자의 질문을 접수한 뒤 코멘트가 돌아오고 끝난다. 추가 질문과 답이 오가는 소통과 토론이 힘들다. 물론 언어 장벽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영어가 한국어로 바뀌면서 누락되는 의미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만 하다.     인터뷰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단어 선택과 표정, 목소리 톤도 신뢰도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이 시의원이 기자들과 오가는 소통을 꼭 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인 유권자들도 하고 있지 않을까.   정치인이 누군가와의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하물며 메가폰 역할을 하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더 듣고 싶다. 더 따지고 싶고 캐묻고 싶어한다. 지적하고 싶은 것도 많다. 정치인들이 이런 바람을 셈법으로만 접근한다면 유권자들은 실망할 것이다.     최근 불거진 음주운전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데이브 민 주 상원의원도 침묵보다는 먼저 나서서 설명하고 극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정치인 소통 능력 소통 자체 인터뷰 기사

2023-05-21

[문화 산책] 사람 귀하게 여기는 사회

신문이나 잡지에서 내가 가장 반갑고 관심 있게 읽는 것은 인터뷰 기사다. 사람 이야기인 인터뷰 기사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 공부를 널리 펼치는 흥겨운 마당이다. 뭔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고, 나를 되돌아보는 귀한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신문에서는 인터뷰 기사가 거의 없어서 섭섭하다. 아마도 인력은 부족한데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해봐서 조금은 아는데 대상 인물을 선정하고, 정보를 정리해서 질문 자료를 만들고,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사로 정리하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선진국에 당당하게 진입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서 보고 읽는 한국의 사람 대접은 전혀 선진국이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선거철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선진국은커녕 맹수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동물의 왕국으로 보인다.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에 정신없이 바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물론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단점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좋은 점을 찾아 북돋아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작은 모임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명언도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의 좋은 능력을 북돋아주는 노력 없이, 흠집을 찾아내서 끌어내리다 보면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친일파 논쟁 같은 것이 좋은 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다각도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는 미술 분야만 보아도 친일파 시비로 인한 손실이 매우 큰 것으로 여겨진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고, 좋은 작품도 많이 남긴 큰 작가 중에 친일파로 몰려 매장된 이가 적지 않다.   일단 친일파로 찍히면 가차없이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친일파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참 애매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런 판단이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좌우되면 매우 위험해진다.   안타깝기는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국제적 거물도 간단하게 날려버리는 걸 보면 미투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 그런 운동이 왜 필요한지는 잘 알겠고, 철저하게 파헤쳐 도려내는 엄격함도 이해는 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손실도 너무 크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고, 내가 한때 몸담았던 한국의 연극 동네는 중요한 핵심 부분이 뭉텅 잘려버리는 바람에, 몰골이 영 말씀이 아니게 되었다. 미투로 밀려난 이들이 다시 활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그 덕에 다음 세대들의 마당이 열린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역사의 큰 물줄기가 막혀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친일파 쳐내고, 왼쪽 날개(좌익) 잘라내고, 미투 도려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런 의문이 들 만큼 쳐내고, 잘라내고 도려낸 부분이 너무 크다는 것은 문제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가 된 일들은 그나마 다시 논의할 여지라도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 없는 깎아내리기’ 때문에 생긴 손실이 얼마나 클까? 그런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사회 사회적 문제 우리 사회 인터뷰 기사

2022-04-14

[중앙 칼럼] 1000명을 만나고, 5600편을 쓰고

중앙일보 기자들이 매달 한 편의 칼럼을 쓰게 된 것은 20년도 넘은 일이다. 취재로 바쁜 기자들에게 월말 시험이나 과제물 내는 것 같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취재하는 사안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훈련의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단순히 기자로서가 아닌 저널리스트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기자들에게 미국사회와 한인커뮤니티 전반에 걸친 의견과 주장을 발표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모든 기자가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에 평기자는 ‘시티퍼트롤’을 칼럼명으로 펜을 들었다. 차장부터는 ‘마감24시’, 부장부터는 ‘중앙칼럼’, 또한 논설실 위원들은 특정 문패를 만들어 칼럼을 써왔다.     대략 20년간 취재기자를 해 온 경우, 약 240편이 넘는다.     물론 칼럼에 전념할 수 있는 칼럼리스트들과 달리 취재와 일반기사 작성을 해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완성도가 항상 100%였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한인사회가 나름의 고유한 주장이나 독립적인 목소리가 별로 없는 환경에서 한 명 한 명 기자의 칼럼은 언론인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지난 1996년 입사한 기자는 칼럼 이외에 지금까지 쓴 기사가 짧은 단신부터 긴 인터뷰까지 5600건이 훨씬 넘는다. 어느 순간 웹사이트에 오른 기사조차 세어보기를 중단했다.     이중 인터뷰가 가장 많았다. 대략 헤아려도 1000명을 넘는다.     내성적인 성격의 기자에게 인터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많으면 1주일에 10명도 더 만난 적이 있지만 성격 탓에 자신 있게 눈을 마주치며 인터뷰한 적이 거의 없다. 가족들에게도 밝힌 적이 없지만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고 괴롭기까지 했다.     편집 기자는 완성된 기사에서 제목과 레이아웃을 정하게 되지만 취재기자의 입장에서는 그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기사로 쓸만한 이야기를 끌어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이 쉽지 만은 않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스스로가 기자로서가 아니고, 독자들의 대표라는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괴로움이 사라졌다. 선배들이 지나치면서 해준 충고를 예전에 귀기울였으면 깨달았을 것을 늦게 알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익숙해지면서 취재 인터뷰를 즐겁게 생각하며 스토리텔링까지 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항상 즐겁지는 않았다. 겨우 1시간 동안 인터뷰하면서 상대방의 수십년 일생을 압축해 들어야 했고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1시간에 걸쳐 기사를 작성했다.     독자들은 몇 분이면 읽을 수 있는 인터뷰 기사를 사명감과 압박감 속에서 여러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인터뷰의 긴장감은 달랐지만 당시 현직이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대입을 앞두고 있는 고교생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90년대 말 열린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여자 축구팀 선수들에게 ‘해외에서 김치 같은 한식을 잘 공급받느냐’는 질문을 했다가 ‘너희 굶느냐’는 질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광고 홍보차 미국에 온 영화배우 신은경, 박중훈, 박신양, 최불암 등 유명인, 고 이만섭 의장 등 정치인들, 한국의 대학 총장들을 한인 독자들을 대신해 많이 만났다. 중앙일보 기자였기 때문에 얻은 영광이다. 개인적으로 보람도 있었고 행복했다.   이제 좋은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기자는 인터뷰를 그만두게 됐다. 수많은 스토리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후배 기자들의 몫이 됐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예정된 것처럼,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한인사회 역동기, 이민의 현장을 기록해 왔던 모든 날들이 영원히 간직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인터뷰 기사 취재 인터뷰 일반기사 작성

2022-02-22

[문화 산책] ‘난 사람’과 ‘된 사람’

좋은 작가 최인호님이 침샘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2013년이니 어느새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흔한 문학상 같은 것도 만들지 않아서인지,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 향년 68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으니… 살아있었으면 뻐근하고 큰 작품 더 많이 썼을 텐데….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명답게 참 신선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좋은 말씀도 많이 남겼다. ‘난 사람’보다 사회를 정화시키는 ‘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최인호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인 구절이었다.   “21세기의 가치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둬야 해. 그것이 사는 보람이지. 근데 모두 일류대 졸업해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고 꿈인 세상이지. 그런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 꿈을 좇아가는 게 보람 있는 삶이지.”   그 인터뷰 기사에서 최인호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안됐다는 마음이 든다, 모두 유령처럼 하얀 얼굴에 꿈도 희망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고, 이것은 어찌 보면 ‘된 사람’이 아닌 ‘난 사람’만 만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만들어낸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나 중학교 도덕책에 실려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르지만, 간추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든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 많이 배워서 학식이 풍부하고 똑똑한 사람을 이른다. 한국의 스카이(sky) 대학을 나온 후, 외국의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난 사람이란 남보다 두드러지게 잘난 사람. 재주가 있어 출세하여 이름난 사람. 흔히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람. 말 그대로 유명한 인물을 의미한다. 정치나 경제 또는 문화 예술 분야 등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된 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됨됨이가 된 사람. 인격적이고 도덕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또 언제나 만나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가진 것이 부족하고, 많이 배우지 않았으며, 인기가 없더라도 삶의 지혜가 풍부하고,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예절 바르고, 겸손하며,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결론은 거의 똑같다. 세상엔 든 사람도 많고 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된 사람은 드물다, 된 사람이 아쉽고 그리운 시절이라는 것이다. 덕승재(德勝才), 즉 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는 교훈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자식은 난 사람, 남편은 든 사람, 가까운 주변 인물은 된 사람, 본인은 쥔 사람이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돌아보게 된다. 된 사람이 많은가? 난 사람 투성이인가? 여전히 앞에 나서서 거들먹거리는 난 사람이 많고, 또 그들이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난 사람, 뜬 사람 되겠다고 돈이나 인기에 목을 매달고 버둥거리는 모습들….   최인호 작가는 말에 그치지 않고 된 사람이 되려 애쓴 사람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 소설인 ‘길 없는 길’을 썼고, 유교를 주제로 한 ‘유림’을 썼다. 종교의 틀에 묶이지 않고, 사람다움의 근본을 찾으려 애쓴 것이다. 부럽고 존경스럽다.   “먼지가 일어났다. 살아 있다./ 당신은 나의 먼지.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야 하겠다. 나는 생명. 출렁인다.”   최인호 작가가 귀천하기 얼마 전 병상에서 마지막 남긴 독백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최인호 작가 작가 최인호님 인터뷰 기사

2022-01-13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